미국 관세, 누가 가든 결국 갈 길?

[트럼프 시대③] 미국 관세 전쟁의 진화: 트럼프 1기부터 2기까지의 전략 변화 분석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

미국의 관세 정책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2일 '관세 해방의 날'을 선포하며 전 세계를 향해 강경 기조로 관세 부과를 밀어붙이던 미국 정부는 4월 23일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을 전면에 내세우며 또 한 차례의 전술 변화를 명확히 했습니다.

전방위로 난무하던 정책의 조준선도 빠르게 중국 중심으로 재정렬되는 모양새입니다. 이번 변화는 트럼프 1기 관세 정책 보다는 바이든 정부의 접근 방식을 더 많이 계승하는 측면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시작된 미국의 최근 관세 정책은, 바이든 행정부, 트럼프 2기 행정부, 그리고 스콧 베센트 관세 정책 등 4기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 4가지 시기의 전략과 목표를 분석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앞으로 미국이 취할 방향성에 대해서 알아볼 예정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 1기: 관세 전쟁의 서막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1기(2017~2021)의 관세 전쟁은 미국의 무역정책 기조가 급격히 보호무역 방향으로 선회하면서 시작됐습니다. 트럼프는 무역 불균형과 불공정을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2018년 1월 태양광 패널과 세탁기에 30-50%의 관세를 부과했고, 3월에는 철강(25%)과 알루미늄(10%)에 관세를 매겼습니다.

미국은 19세기 고율 관세를 통해 제조업 산업 기틀을 마련하고 글로벌 주요 국가로 도약했던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은 누가 봐도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국이죠. 미국이 몇십 년 만에 관세를 되살리자 세계 각국은 당황했습니다.

미국은 관세의 핵심 화력을 중국으로 모았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3월 22일, 트럼프는 무역법 301조에 의거하여 500-6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중국이 불공정한 무역 관행과 지적재산권 침해 등으로 부당한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관세 적용 대상은 점점 더 확대됐고, 2018년 7월 8일에는 340억 달러의 중국산 제품 818개 품목에 25%의 관세가 발효됩니다.

중국은 이에 즉각적으로 반발하며 보복관세를 시작합니했다. 중국은 2018년 4월 2일 알루미늄, 항공기, 자동차, 돼지고기, 대두를 포함한 128개 미국 제품에 관세를 부과했습니다. 이후 미국은 며칠 차이를 두고 추가로 각각 160억 달러,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단계적으로 관세를 확대합니다. 중국 역시 이에 맞서 미국산 수입품 전반에 맞불을 놨고, 미·중 무역전쟁은 빠르게 확산되게 됩니다.

전격적으로 이어지던 관세 공방은 2019년 10월 미-중이 부분적인 타협을 보면서 일시적 휴전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미국은 원래 25%에서 30%로 인상하려던 2500억 달러 규모 대중 관세 인상을 보류했고 중국은 5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농산물 구매를 약속했습니다.

이 합의를 통해 양국은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지만, 싸움의 원인이 됐던 구조적인 문제들은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말까지도 “중국이 시장을 더 개방하지 않는 한, 대중 관세를 철회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무역적자 축소와 중국의 행태 변화를 위한 압박 수단으로 관세 전략을 지속했습니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

바이든 정부: 전략적 타격 범위 재조정

전격적으로 이뤄졌던 트럼프 1기 관세 전쟁은 많은 이들에게 일종의 기행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미 글로벌 공급망이 촘촘히 이어져 세계가 한덩어리로 돌아가는 세상에 관세로 자국의 무역 적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트럼프의 사고방식이 생경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많은 이들의 예상과 달리, 2021년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과의 협력을 중요시하면서도, 트럼프가 시작한 중국에 대한 고율 관세 기조를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바이든 집권 기간(2021~2025) 동안 미·중 관세 수준은 큰 변동 없이 유지되었는데, 4년 주기 재검토에서도 관세 유지 결정이 내려졌다는 점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위기감이 단순히 트럼프 개인의 정책이 아닌 미국 전체의 전략적 방향임을 잘 보여줍니다. 단순한 경제학의 렌즈로 바라본 학자들은 미국 관세 조치를 이해할 수 없겠지만, 정치경제학의 렌즈로 바라봤을때는 관세라는 수단은 충분히 개연성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중국의 막대한 수출 흑자와 산업 보조금, 그리고 일대일로 정책을 통한 글로벌 영향력 확대에 더욱 큰 위기감을 느낀 바이든 행정부는 관세의 정밀 타격화를 추진했습니다. 2024년 미 무역대표부(USTR)는 2024년 5월, 무역법 301조 검토를 완료하고 중국 상품에 대한 기존 관세를 유지하는 한편, 전략적 산업 분야에 대한 관세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미국은 그해 9월 말부터 중국산 전기자동차에는 100%의 관세, 태양광 패널에는 50%, 전기차 배터리 부품·핵심 광물·철강·알루미늄 등에도 25% 등 초고율 관세가 단계적으로 부과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품목과 세율을 보면 미국 관세정책의 밑바탕에는 일관적으로 중국 경제에 대한 위협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우선, 중국은 미국을 상대로 막대한 무역흑자를 지속해왔지요. 지난해인 2024년을 보면 중국의 대외 무역흑자는 사상 최대인 9922억달러에 달했으며, 특히 미국과의 무역에서만 분기별 수백억 흑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국 입장에선 이런 만성적 무역적자 구조가 상당히 마뜩찮은 것이었습니다. 자국에서는 제조업이 빠르게 떠나가고 있었고, 비 해안 지역 국민들과 내륙 지방 국민들의 빈부 격차도 커져갔습니다. 이는 미국이 더 강력한 상대 우위를 가지고 있었을 때는 크게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으로 벌어들인 달러를 이용해 패권을 넘보기 시작했습니다. 강력한 국유기업을 육성하는 한편, 광범위한 미래 산업에 보조금을 살포했던 것이죠. 특히 ‘중국제조 2025’ 같은 국가 주도의 첨단 기술 분야 지원책은 세계무역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로 간주될만한 것이었습니다.

일대일로(一带一路, Belt & Road Initiative) 사업을 통한 중국의 영향력 확장도 미국에게 서서히 위협이 됐습니다. 중국은 역시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통해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까지 광범위한 인프라 투자를 진행하며 경제적 영향력과 지정학적 입지를 강화했습니다. 미국 정부 관료들은 일대일로를 군사·경제적 안보 위협으로 규정해 왔으며, 이를 견제하기 위해 동맹국과의 인프라 협력이나 개발금융 조치를 모색해 왔습니다.

종합적으로 볼 때, 막대한 무역흑자를 가능케 한 중국의 수출주도 전략, 정부의 대대적 산업 보조금, 그리고 일대일로를 통한 세력 확장이 미국 관세정책 변화를 추동한 주요 요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게 관세 압박은 점점 중국의 국가 주도형 경제 모델에 변화를 요구하는 효율적 수단으로 인식되었던 셈입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관세 전쟁이 중국 무역에 대한 단순 견제 수준이었다면, 바이든 정부 관세 전쟁은 중국의 무역흑자 견제를 넘어, 미국 산업의 미래 경쟁 분야를 보호하고 중국의 해당 분야 진출을 어렵게 만드는 전략적 차단으로 한 발 더 나아간 것이었습니다. 이 시기, 바이든 정부가 우방국과의 협력을 강화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을 견제해 중국의 세계 확장을 막고 내수 진작을 유도하려는 과정에서 동맹국들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이죠. 이는 트럼프 1기의 관세전쟁을 계승하면서도, 더 정교하고 선택적인 방식으로 진화시킨 모습이었습니다.

트럼프 2기 정부:

국내 혐오 정치와 결합된 범중국 타격 전략으로

바이든 정부에 이어 출범한 트럼프 2기 정부가 취했던 관세 정책의 가장 큰 차이점은 글로벌 국가들과 무차별적인 관세 전쟁의 양상을 보였다는 점입니다. 2기 정부는 지난 4월 2일 미국 관세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을 선포하고 세계 모든 나라에 10%의 보편관세를, 대미 무역에서 흑자를 내고 있는 국가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상호관세를 매기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중국이 아니라 세계를 상대로 일종의 무역 선전포고를 내린 셈입니다.

트럼프 2기 상호관세를 발표하는 트럼프 대통령

미국의 전통적인 국제 관계를 십분 활용한 대중국 억제 전략으로 완성되어가던 미국의 관세 정책이 이렇게 뒤틀린 배경에는 국내 정치가 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4년 쇠락한 중공업 중심 공업지대인 '러스트 벨트'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중국에 대한 혐오 감정을 이용했습니다. 오늘날 러스트 벨트가 낙후된 이유는 불공정한 방식으로 무역 흑자를 내고 미국 제조업체들을 유치해가는 중국 때문이며, 중국산 제품의 범람이 미국 제조업 일자리를 빼앗고 저품질 제품은 소비자 건강을 위협한다는 논리였습니다.

'아메리칸 퍼스트(Amerian First)'라는 대선 구호를 공약으로 구체화시키고 싶어하던 트럼프에게 이 논리를 제공했던 인물이 현재 백악관 무역 고문으로 있는 피터 나바로입니다. 나바로는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도 무역·제조업 정책 수석 고문을 맡아 관세 전쟁을 설계했지만, 행정부 내 자유무역론자 참모들과 의견 충돌을 빚으면서 강한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했던 인물입니다.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이 미국의 경제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했던 나바로의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진화했습니다. 그는 중국만 겨냥해서 관세를 부과할 경우, 중국 제품이 다른 국가를 통해 우회 수출될 가능성이 있으니 중국 공급망을 방치하는 국가들에게도 관세를 매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미국 중심의 새로운 공급망 구축을 위해 동맹국들을 압박해 제조업 기반을 미국으로 복귀(Reshoriong) 시켜야 한다는 논리로 연결됐습니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 고문

상황이 이렇다보니 관세는 미국의 위대함을 보여주기 위해 세계 각국에게 보편적으로 징수해야 하는 미국 소비시장 접속료 같은 개념이 됐습니다. 트럼프 지지 유권자들의 '미국 뽕'을 유지하려면 국제 사회에서 통하는 강제력을 보여줘야 했죠. 70대의 나바로는 이런 상황을 매우 잘 이해했습니다. 2기 행정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거의 거스르지 않는 농도 높은 '예스맨'들로 내각을 꾸리자, 나바로는 더이상 아무 방해를 받지 않고 관세 전략의 핵심 설계자로 행세하게 됩니다. 실제로 2기 행정부가 내놨던 상대국 무역 흑자와 연동된 고율의 상호관세, 10% 보편관세, 생산기지 미국 유치(온쇼어링, Onshoring) 등은 모두 그가 썼던 논문 The Case For Fair Trade에서 주창됐던 것들입니다.

4월 2일 미국이 발표한 상호관세는 이런 과정을 거쳐 설정됐습니다. 살벌한 수준이었습니다. 가장 흑자폭이 큰 중국에 34%, 인도는 26%, 한국과 일본은 각각 25%, 24%, 유럽연합(EU)에는 20%의 관세가 부과됐습니다.

미국의 트리플 약세와 노출된 트럼프의 아킬레스건

다시 시작된 트럼프와 중국의 2차 관세 전쟁은 금방 달아올랐습니다. 중국이 미국에 같은 수준의 보복관세를 매기자, 미국은 더 높은 재보복 관세로 응수했고, 결국 미국에 수입되는 중국 상품에 대한 관세는 145%까지 수직 상승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 상황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초강경 관세 전면전의 부작용이 미국의 금융시장을 직접적으로 타격했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러운 광범위 관세폭탄 소식이 전해지자 우선 글로벌 증시가 급락하고 안전자산 선호로 금과 달러화 강세가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이는 며칠 지나지 않아 미국 국채 금리 변동성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상승하고, 달러화는 약세가 뚜렷해지는 모양새로 반전되기 시작합니다. 주식, 채권, 달러화 가치가 모두 약세를 보이는 '트리플 약세'가 나타난 것입니다. 관세 해방의 날 발표때만 해도 102 수준이던 달러인덱스는 급기야 지난 22일에는 최근 3년 중 가장 낮은 수준인 97.92까지 하락하기도 했습니다.

주식, 국채, 달러화의 트리플 약세는 해외에서 투자한 달러화 자산에서 돈이 급격히 빠져나와 본국으로 돌아갈 때 나타납니다. 트럼프의 미국이 글로벌 신용을 상당 부분 잃어버린 게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월가 금융사들 사이에서는 사태가 심각해질 경우 미국 채권시장까지 붕괴 조짐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습니다.

4월 2일 이후, 약 20여일 동안 전격전 모드로 일관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강경한 태도를 접고 관세 속도 조절을 시사하는 유화적인 태도를 비춘 것은 총 세 차례입니다. 첫 번째는 4월 9일,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의 관세를 90일 유예하겠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4월 12일,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상호관세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지난 22일입니다. 그는 이날 중국 관세를 150% 보다 훨씬 아래로 낮출 것이며,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해임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트럼프의 태도가 변화했던 세 번의 순간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전일 미국채 10년물 금리가 급등세를 보이며 4.5%에 육박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미국 국채 금리 급등과 국채 가격 폭락이 트럼프의 아킬레스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강경 일변도였던 트럼프 2기 관세 정책이 생각보다 빠르게 한계를 드러내면서 트럼프 행정부도 전략 조정에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동시에 관세 정책의 컨트롤타워 인선에도 변화가 감지됐습니다. 초반 강경 관세정책을 주도한 인물들은 피터 나바로 백악관 보좌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등 강경파 참모들이었습니다. 정작 경제현안 조율의 핵심인 재무장관 베센트는 주요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었던 것으로 전해졌었지만, 금융시장 혼란이 터지자 트럼프 행정부에는 이를 수습하기 위한 인물이 필요했습니다.

스콧 베센트: 새로운 관세 전쟁의 컨트롤 타워

미국 채권시장 발작 이후, 트럼프가 공식적으로 스콧 베센트를 관세 컨트롤타워로 임명하거나 치켜세운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이는 어느정도 정황이 명확해보입니다. 베센트는 4월 9일부터 세계 각국과의 관세 협상 실무를 지휘했지만 전면에 나서는 빈도는 낮았습니다. 그러나 4월 23일 국제금융연구소(IIF)가 주최한 행사 기조연설부터는 매우 왕성한 대외 발언을 쏟아놓고 있습니다. 그는 23일 연설에서 "미국과 중국의 현재 관세 수준은 지속 불가능하고, 양측의 관세가 내려가야 무역 협상이 진행될 수 있다"면서 그동안의 강경 모드가 더이상 지속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이 시점 이후에는 관세 전쟁을 포기하는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는 않아 보입니다. 여전히 미국의 핵심 목표는 관세를 활용해 중국이 패권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주저앉히는 것이고, 그를 위한 방법론이 달라지는 것일 뿐입니다. 베센트는 이날 연설에서 향후의 미국의 정책적 방향성을 암시하는 몇 가지 얘기를 꺼냈습니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

첫째는 국제기구와 다자협력 채널의 활용입니다. 베센트는 트럼프 1, 2기때 경시됐던 IMF, 세계은행 등의 다자 규범 기구들에게 '제대로 할 일을 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G2국가 중 하나인 중국이 여전히 개발도상국 혜택을 받고, 때로는 불투명하게 환율을 운용하면서 수출 주도형 경제모델에 의존하는 바람에 세계 경제가 왜곡되고 있는데 이를 지적해야 할 IMF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않고 있다는 것이죠. 베센트는 중국은 이제 성인 경제(adult economy)로서 국제금융 질서에서 그에 맞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중국이 경제 규모에 비해 국제 사회에 이렇다할 기여를 안 하고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에 가까운 지적입니다. 베센트는 미국이 강압적으로 일방적인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보다는 중국의 의무 불이행을 지적해 정당성을 갖춘 국제 사회의 공조와 압박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국을 고립시키는데 더 유효한 전략이라고 판단한 듯 합니다. 시간적 여유도 길게 잡았습니다. 베센트는 "중국과의 완전한 협상 타결 까지는 2~3년이 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미국이 제조업을 강화하고 중국은 내수 소비를 늘려 수출 의존도를 낮추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며 "중국이 진정으로 재균형을 원한다면 함께 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는 환율 조작의 원천적 차단입니다. 트럼프 1기 때 중국 정부는 고율의 관세가 부과되자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대응했습니다. 10%관세가 올라가더라도 자국 통화 가치가 10% 떨어지면 사실상 수출에는 아무런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 점을 이용한 것입니다. 트럼프 2기에서도 위안화 약세 유도는 중국이 가진 가장 주효한 대응 카드 중 하나로 거론된 바 있습니다.

이를 간파한 베센트는 이번 관세 전쟁 초기부터 각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환율 문제를 올리는 식으로 대응했습니다. 일본과의 협상에서도 베센트의 직접적인 요구로 엔화 환율 문제가 협상 주제로 추가됐고, 한미 협상에서도 원화 환율 문제가 베센트의 요구로 막판에 포함됐습니다. 이는 그만큼 미국의 관세 정책에서 상대국 환율 조작 문제에 대한 대응이 중요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23일 연설에서 크게 달라진 점은, 이를 미국이 특정 국가에 직접적으로 요구하기 보다는 국제 질서에 넣어 압박하는 방식으로 전략이 전환됐다는 점입니다. 베센트는 "IMF의 설립 목적 중 하나가 국제 통화 협력 촉진, 균형 있는 무역 성장 보장, 그리고 경쟁적 평가절하(competitive devaluations) 등 환율 조작 방지”라고 강조하면서 IMF가 환율 조작과 같은 글로벌 불균형을 바로잡는 본연의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복수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연설 이후 대일 관세 협상에서 엔화 환율 문제는 빠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러니까 상대국 통화 조작 가능성 차단을 굳이 내정간섭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 미국이 따로 해당 국가에 요구하는 조치의 목록에 넣지 않고, 자연스럽게 국제 질서와 정당성의 영역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기서도 문제가 시정되지 않는다면 미국은 환율조작국 지정이라는 카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미 재무부는 대미 무역흑자 150억 달러 초과, 경상흑자 GDP 대비 3% 초과, 지속적 외환시장 개입 여부 등을 기준으로 환율조작국을 지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친중 성향의 국가들을 중국으로부터 분리시켜놓는 것입니다. 이날 나온 발언은 아니지만 베센트는 관세 이슈로 난장판이 된 본국을 뒤로하고 지난 14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해 중국과의 통화 스왑을 종료하는 조건으로 미국이 직접 달러 통화스왑을 제공해주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최근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중국은 지난 2013년부터 신흥국에 돈을 빌려주고 인프라를 건설해주는 경제 협력 차원에서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죠. 이는 중국의 글로벌 영향력과 수출 판로, 위안화 수요 등을 크게 확장시켜주는 역할을 했는데, 아르헨티나와는 2022년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200억달러 이상의 통화스와프와 230억달러 가량의 중국 투자 및 금융 지원을 약정한 바 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남미에서 가장 큰 경제 규모를 가진 국가로, 기본적으로 자원 매장량이 많고 리튬 같은 전략 자원도 상당량 보유하고 있습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자신의 수출품을 받아서 소비를 하면서, 농축산물 분야에서 미국을 대체할 만한 무역 파트너로 생각했을 것이고, 그 연결을 위해 일대일로를 진행했을 것입니다. 이를 지켜보던 베센트가 중국의 아르헨티나 연결을 차단하기 위해 통화스왑 카드를 꺼내들고 나온 것입니다.

결국 2기 트럼프 정부는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을 통해 바이든 정부의 관세 전쟁 전략을 부분적으로 계승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베센트표 관세 전쟁에는 바이든 관세와 명확한 차이점도 있습니다. 바로 우방과 동맹들에게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합당한 대가 지불을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이미 10%의 보편관세가 발효됐고, 미국은 과거 대비 모든 국가들에게 10%의 추가 관세를 얻어내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요컨대 트럼프 2기의 관세전략은 바이든의 전략적 틀을 계승하되, 더 직선적이고 호전적인 방식으로 적용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궁극적 목표: 중국 경제모델의 전환 유도

미국 관세정책 변화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중국으로 하여금 그들의 경제성장 모델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도록 압박하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중국 경제가 현재까지의 수출주도형에서 내수 중심형으로 탈바꿈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죠. 트럼프 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를 거치며 이어진 대중 관세 공세는 중국의 대미 수출을 어렵게 만들어 중국의 수출의존도를 낮추는 효과를 노리고 있습니다. 실제 관세 인상으로 중국의 대미 수출은 급감할 전망이며, 일부 전문가는 “향후 수년간 중국의 수출이 현재 수준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 시장에서의 성장이 가로막히면, 거대한 생산능력을 국내 소비시장으로 돌리지 않고서는 경제성장을 유지하기 어렵게 됩니다. 미국은 바로 이러한 구조변화의 압력을 가함으로써, 중국이 더 이상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저가 수출공세로 고속성장하는 모델을 지속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이런 전략적 목표에는 몇 가지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중국이 내수 진작과 소비 중심 성장으로 전환하면, 거품 낀 수출산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도 축소될 수밖에 없겠죠. 이는 중국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와 함께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줄 것입니다. 또한 중국이 무역흑자를 덜 쌓게 되면, 이를 통해 축적된 외환으로 해외 투자나 일대일로 확장에 쓸 여력도 감소하게 됩니다.

이렇게 중국 경제의 체질이 구조적으로 바뀌면 미국과의 경제 마찰 요인도 완화될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물론 중국이 쉽게 경제모델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나, 미국은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관세압박을 통해 서서히 중국의 선택지를 좁혀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마디로 베센트표 관세 전략은 가능한 다양한 루트를 통해 중국에 관세 압박을 가함으로써 수출로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현실을 자각시키고 중국 스스로 경제 운영 방식을 수정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현재는 미국도 중국도 원하는 바를 혼자서는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어느 정도 증명된 상황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전략의 성패는 중국이 이미 형성하고 있는 경제블록인 브릭스(BRICs) 소속 국가들을 미국이 어떻게 자기 편으로 끌어오는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목표는 오랜 기간 동안 '중국 견제기'로 주목받았던 인도가 될 것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29일(현지시간) 인도와의 관세 협상이 거의 완료 수준까지 진행됐으며, 인도 총리와 인도 의회 승인만 남은 상태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그대로 협상이 타결된다면 국제 사회에서의 중국의 입지는 축소 수순을 밟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중국은 29일 왕이 외교부장 명의로 브릭스 국가들에게 미국의 관세 부과에 저항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왕이 부장은 "오랫동안 자유무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누려온 미국이 이제 관세를 협상 카드로 사용하여 막대한 이익을 요구하고 있다"며 "침묵을 유지하고 타협하며 힘을 키우기로 선택하면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이 자신의 운을 더 밀어붙이고 싶게 만들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올해 5, 6월의 펼쳐질 외교전이 앞으로 미-중 양국에 중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올해 7월로 예정되어 있는 브릭스 정상회담이 미-중 관세 전쟁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또 한번의 분수령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트럼프의 전략 일탈이 가져올 위험성

그럼 미국은 이번에도 중국을 상대로 무난한 우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미국의 관세 전략이 어느 정도 정상적인 루트로 되돌아오는 모양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성향에 따른 일탈이 발생할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트럼프는 직설적이고 순간적인 판단으로 정책 방향을 흔들기도 하는데, 관세전쟁 국면에서 이런 돌출 행동은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만약 향후에도 트럼프가 베센트 등의 전문가 조언을 무시하고 정치적 계산이나 충동에 따라 관세정책의 노선을 이탈한다면, 현재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국제공조와 시장 안정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협상 진행 중에 예고 없이 관세율을 대폭 추가 인상하거나, 또는 반대로 충분한 양보를 얻기 전에 성급히 관세 철회를 결정한다면 미국의 신뢰도는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됩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미국의 협상력 약화와 국제 경제질서의 혼란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개인적인 경제적 이익이나 국내 정치적 이득을 위해 관세 정책을 흔들 가능성도 경계 대상입니다. 관세 전쟁은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에도 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에, 단기 성과를 위해 전략을 바꾸는 것은 양날의 검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베센트라는 컨트롤 타워 하에 수립된 장기 전략은 일관성과 인내를 필요로 하지만, 트럼프가 조급하게 성과를 과시하려 들 경우 중구난방 메시지가 나오면서 중국에 오히려 협상의 주도권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동맹국들에 대해서도 지나친 압박을 가하면 자칫 대중 공조 전선의 이탈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결국 트럼프 2기의 관세정책 성공 여부는 대통령 본인이 얼마나 전략적 인내심을 갖고 일관된 노선을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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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ie La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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