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X : 세계 3위 코인거래소 몰락의 전말

거래량 기준 세계 3위 거래소였던 FTX의 몰락이 크립토(암호화폐) 투자자들을 다시 한 번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부실 의혹이 제기된지 일주일 만에 FTX 수장인 샘 뱅크먼 프리드(Sam Bankman-Fried)는 거래소에 80억 달러(한화 약 10조5000억원) 상당의 회계적인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고 파산을 신청했다. 최소 수십억 달러 어치의 거래소 고객 예치 자산을 빼돌려 투자 관련 자회사인 알라메다 리서치(Alameda Research)에 수혈했다는 것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기업가치 320억달러(한화 약 42조원)로 평가받던 거래소가 며칠 만에 힘없이 무너져내리자 암호화폐 가격은 큰 폭으로 움직였다. FTX 거래소 토큰인 FTT는 지난 2일까지만 해도 개당 25달러 선을 유지했으나 10일에는 한 때 개당 1달러선까지 95% 이상 폭락했다. 몇 달 동안 1만9000~2만달러 선을 견조하게 고수하던 비트코인 가격도 1만5500달러선까지 20% 넘게 밀렸다. 이더리움을 비롯한 알트코인 대부분은 비트코인보다 더 높은 낙폭을 보였다.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선량한 고객들 대부분이 파산한 거래소에 그대로 예치금이 묶인 상태다. 이 돈은 주인에게 무사히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여러모로 크립토 업계 역대 최대 사고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사태의 앞단부터 뒷편까지 차근차근 짚어본다.
허세와 거짓말과 무책임…세계 3위 거래소 FTX, 10일만에 파산
사태의 발단은 지난 11월 2일 발행됐던 크립토 전문매체 코인데스크의 기사였다. 코인데스크는 이 기사에서 FTX 거래소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투자전문 자회사 알라메다 리서치(Alameda Research)의 재무제표 내용을 공개하며 회사가 위험할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기사에 따르면 지난 6월 30일 기준, 알라메다 리서치가 가진 대부분의 자산은 모회사인 FTX의 토큰인 FTT였다. 총 자산 146억달러(한화 약 19조1689억원) 중 36억 6000만달러(한화 약 4조8055억원) 어치가 FTT 토큰이었다. 21억 6000만달러(한화 약 2조8360억원) 어치 FTT 담보 대출도 있었다. 알라메다 리서치가 유명한 투자전문 회사임에도 자산 포트폴리오는 사실상 FTT 시장 가격 변동에 상당히 취약한 상태라는 얘기다. 나머지 자산의 상당 부분도 솔라나(SOL) 코인 등 ‘친 FTX’로 분류되는 자산들이었다.
코인데스크 기사가 공개되고 며칠 후인 지난 7일, 글로벌 1위 거래소인 바이낸스(Binance) CEO 창펑자오(Changpeng Zhao)는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5억 8000만달러(한화 약 7615억원) 상당의 FTT 토큰을 위험 관리 차원에서 처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실제로 이 토큰들을 바로 처분할 수 있도록 바이낸스 거래소의 핫월렛으로 옮겼다.
암호화폐 데이터 사이트 코인마켓캡 자료에 따르면 올해 11월 1일부터 5일까지 FTT 토큰의 글로벌 일평균 거래량은 약 9155만달러였다. 5억 8000만달러 어치의 FTT 토큰이 일거에 시장에 풀리면 FTT 가격이 폭락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알라메다 측은 바이낸스에 개당 22달러의 장외거래(거래소에서 공개거래하지 않고 판매자와 구매자가 1:1로 만나서 거래하는 방식)를 제안했으나, 창펑자오는 이를 거부했다. 이 과정이 트위터에서 생중계됐고, 불안해진 투자자들은 FTX 거래소에 넣어뒀던 자금들을 빼내기 시작했다. 두 회사의 관계상 알라메다 리서치의 부실은 FTX 거래소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일이 이렇게 커지자 FTX의 수장인 샘 뱅크먼 프리드(Sam Bankman-Fried)는 트윗을 통해 거래소는 고객 인출 요청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불과 이틀 뒤인 11월 8일 FTX의 코인 출금이 중단됐다. 시장 불안이 고조되는 가운데 바이낸스는 같은 날 밤, FTX와 거래소 인수 투자의향서(LOI)를 작성하고 실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9일, 투자 의향을 철회했다. 실사를 해 보니 FTX의 부실이 생각보다 크고, 미 규제 당국이 FTX 조사에 착수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FTX는 결국 지난 11일 미국 델라웨어 소재 법원에 파산법 11조에 따른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부실 의혹이 제기된지 열흘 만에 글로벌 3위 암호화폐 거래소가 완전히 몰락한 셈이다. FTX거래소와 미국 지사 격인 FTX US, 알라메다 리서치와 130여개 계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블룸버그와 월스트리트 저널 등에 따르면 이들의 부채는 적게는 100억달러(한화 약 13조원)에서 많게는 500억달러(한화 약 66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FTX 거래소 이용자 중 자신의 자산을 돌려받지 못한 사람도 약 1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거래소 토큰 FTT 이용한 과도한 레버리지가 화 불러
세계 3위의 거래량을 자랑하던 암호화폐 거래소가 어떻게 10일만에 몰락하게 됐을까. FTX 사태의 중심에는 FTX 거래소의 거래소 토큰인 FTT가 있다. FTT 토큰은 용도가 명확한 암호화폐다. 암호화폐 투자자가 FTX 거래소에서 거래를 하면 수수료를 내야 하는데, 이때 FTT로 지불하면 최대 60%의 할인을 받을 수 있다. FTT를 사용하지 않고 거래소에 스테이킹 하면 여러가지 유망한 코인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즉, FTT의 가치는 FTX 거래소의 영향력과 거래량에 비례해서 책정되는 측면이 있고, 이런 점에 있어서는 앞서 올해 5월에 몰락한 암호화폐 프로젝트 테라와 유사하다.(테라는 스테이블 코인 UST가 많이 사용될수록 거버넌스 코인 루나(LUNA)의 가치가 커지는 구조였다.)
암호화폐 공시 사이트인 메사리(Messari)에 따르면 FTX의 총 공급량은 3억 5000만개다. 지난 2019년 세 차례에 걸친 프라이빗 토큰 세일을 통해 5930만개의 FTT 토큰을 적게는 개당 0.1달러, 많게는 0.8달러를 받고 판매한 바 있다. 이 토큰 판매에는 알라메다 리서치, 바이낸스, 코인베이스 벤처스(Coinbase Ventures), 패러다임(paradigm) 등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라메다 리서치는 이 초기 물량을 이용해 그동안 적지 않은 자금을 조달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FTX가 거래소 사업을 담보삼아 발행한 FTT를 알라메다 리서치가 싼 값에 대량 구매하고, 그렇게 산 FTT를 담보로 잡고서 FTX가 다시 알라메다 리서치에 자금을 빌려주는 방식이다.
이 경우, FTX 거래소가 성장하기만 하면 알라메다 리서치는 앉아서 상당량의 투자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유명 크립토 벤처캐피탈인 알라메다 리서치가 투자를 하며 FTT를 열심히 사용하면 FTT의 평판도 좋아지게 된다. 그렇게 FTT 가격이 상승하면 모두가 행복해진다. 하나는 거래소고 다른 하나는 투자 회사지만, 사실상 둘은 이해 관계가 정확히 일치하는 일심동체나 다름 없다는 얘기다.
2020년 세계 각국의 코로나19 구제 정책과 함께 암호화폐 상승장이 찾아오며 이 둘의 시너지는 폭발적인 성과를 거둔다. 거래소 첫 상장일인 2019년 7월 29일 FTT 토큰의 가격은 개당 약 1달러 수준이었다. 그러나 2년 여 뒤인 2021년 9월에는 개당 85달러까지 상승했다. FTX 거래소의 빠른 성장도 한 몫 했지만, FTX 측의 토큰 가격 부양 노력도 컸다. 이 거래소는 지금도 거래소가 매주 거두는 수수료 수익의 1/3을 떼어, FTT 토큰을 산 후 소각한다. 토큰 가격에 지속적인 상승 압력을 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런 구조는 FTT 가격이 떨어질 때 동시 다발적인 문제를 낳는다. 개당 85달러를 찍은 후 FTT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고, FTX와 알라메다 리서치의 자산 규모도 자연스럽게 축소되기 시작했다. 덩달아 토큰이 가진 담보 능력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큰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문제의 코인데스크 기사에 등장했던 재무제표 기준일인 올해 6월 30일자 FTT 가격은 개당 24~25달러 선이었다. 이후에도 3개월 동안 FTT 가격은 최소 이 수준을 유지했다.
그 와중에 FTX 측은 블록파이 등 테라 사태로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들을 구제하며 백기사를 자처하기도 했다. 암호화폐 하락장 여파로 자산이 축소되었겠지만 이때까지는 어느 정도 버틸만 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바이낸스가 본격적인 매도에 나선지 하루만인 지난 8일 FTT 가격이 22달러에서 5.4달러로 75% 폭락하자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백기를 들어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FTX가 파산을 발표한 11일 FTT 가격은 개당 2.2달러 수준이다.
개인적으로 코인데스크 기사를 처음 보고 의아했던 점이 있다. 분량이 길지 않은 기사에서 유명 벤처캐피탈의 재무제표상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하는데 정작 재무제표 이미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통상 이럴 때는 재무제표 내용을 믿을 만한 제보자에게 말로 들었거나, 제보한 사람의 신분이 재무제표에 드러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 코인데스크에 FTX의 구조적 약점에 대해 제보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크립토 업계에서는 이 역할을 글로벌 1위 거래소인 바이낸스 측이 했다고 추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물론 바이낸스 측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의아한 지점들이 있다. 바이낸스의 수장인 창펑자오는 ‘FTT 토큰을 계속 가지고 있는 것은 위험하니 처분해야겠다’면서도 FTX 측의 장외거래 요청은 거부했다. 5억달러 어치의 막대한 토큰을 가장 빠르고 손실없이 처분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장외거래 임에도 말이다. FTX 파산이라는 대형 사고를 원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단순히 자신들이 보유한 위험 자산의 안전한 유동화 이외에 다른 목적이 있었을 가능성은 확실해 보인다.
바이낸스 VS FTX…고래 싸움에 업계가 터지다
창펑자오는 이번 사태의 중심에서 여러 개의 트윗을 남겼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트윗은 FTX가 고객 자금 인출을 중단하기 하루 전인 11월 7일 오전에 올린 것이었다. 그는 “FTT를 처분하는 것은 루나 사태에서 배운 위험 관리”라면서 “우리는 누구에게도 반대하지 않지만, 뒤에서 다른 업계 플레이어를 상대로 로비하는 사람들을 앞으로 돕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다른 업계 플레이어를 상대로 로비하는 사람’은 FTX의 수장 샘 뱅크먼 프리드를 말한다. 그는 이번 사태 직전까지만 해도 크립토 업계에서 미국 정치인들에게 가장 높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사로 꼽혔다. 지난 대선 때는 조 바이든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 캠프에 520만달러를 후원했다. 바이든 후원자 중 2번째로 많은 금액이었다.
지난 5월 24일에는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차기 대선 기부금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중 “10억달러(한화 약 1조3100억원)의 잠재적 한계(soft ceiling)가 있다”고 말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미국의 정치 기부금 추적 단체인 오픈시크릿(Opensecrets.org)에 따르면 샘 뱅크먼 프리드는 올해에만 민주당에 3587만2000달러, 공화당에는 15만5000달러의 기부금을 냈다.
이런 영향력은 그동안 프리드의 평판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향후 크립토 업계에 정부 규제가 들어오는 것은 시간 문제인데, 그중에서도 글로벌 표준이 될 만한 미국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업계 인사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미국 상원에서 만들고 있는 디지털상품소비자보호법(DCCPA)을 계기로 180도 뒤집히게 된다.
디지털상품소비자보호법이란 암호화폐를 디지털 상품으로 간주하고, 암호화폐를 거래하는 플랫폼은 모두 디지털 상품 거래시설로 간주해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감독하게끔 한다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는 법이다. 현재 발의된 법 내용을 보면 대부분의 탈중앙화 금융(DeFi)와 탈중앙화거래소(DEX)에도 고객확인(KYC) 등 중앙화 거래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규제를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 법이 그대로 통과되면 미국 내에서는 FTX 같은 중앙화 거래소들이 별 위험 없이 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
프리드는 지난 10월 이 법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서면서 크립토 업계의 빈축을 샀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디지털 자산 업계 표준도 함께 제시했는데, 그 안에 상원 법안보다 한층 더 강력한 규제를 시사하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는 이유로 강한 비판을 받았다. 가장 문제가 됐던 것은 미 해외자산통제국(OFAC)으로 하여금 온체인 지갑 블랙리스트를 관리시켜야 한다는 대목이었다.
미 해외자산통제국은 미국인의 국제 금융 거래를 감독하는 기관으로, 이란이나 러시아, 북한처럼 미국이 포괄적인 제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와 미국인의 금융거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다. 실제로 올해 8월에는 북한 해커들의 자금세탁에 활용됐다는 이유로 디파이 사용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암호화폐 믹싱 서비스 토네이도 캐시를 제제 대상에 올린 바 있다. 이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디파이 사용이 매우 불편해지고, 미국과 비슷한 결의 규제 프레임워크를 사용하는 국가에서는 FTX처럼 규제 친화적인 중앙화 거래소들이 유리해질 가능성이 높다. 프리드의 로비 능력은 크립토 업계 전체가 아니라 오직 프리드 자신과 FTX를 위해서 사용될 것이라는 점이 확실해진 셈이다.

바이낸스 역시 중앙화 거래소지만 FTX와는 사정이 매우 다르다. 이들은 특정 국가의 규제에 전체 거래소가 지장을 받을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일종의 무국적 점조직 형태로 거래소를 경영한다. 정확한 본사 위치도 공개하지 않는다. 세계 각국에서 바이낸스 거래소로 몰려들어 자유롭게 거래를 하는 방식이다.
이렇다보니 가상사설망(VPN)을 활용해 바이낸스에서 출신 국가를 숨기며 자금을 환전하는 금융제제국 사용자들이 많다. 바이낸스 본사도 VPN 사용을 장려한다. 2020년에는 북한 해커들이 바이낸스에 암호화폐 계좌를 개설한 사실이 밝혀져 화제가 됐고, 최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이란의 암호화폐 트레이더들도 같은 방법으로 바이낸스를 활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이 2018년부터 대 이란 금융제제를 상당히 강화했음에도 무용지물이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미국 정부가 바이낸스를 곱게 볼리 없다. 글로벌 3위 거래소인 FTX가 1위로 올라가기 위해 미국 정부를 어떤 방향으로 활용할지는 어느정도 명확한 문제였다.
얄궂은 일이지만, 이번 사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5억 8000만달러 상당의 FTT 토큰이 바이낸스로 건너가게 된 배경에도 바이낸스에 대한 영미권 국가들의 부정적인 시각이 일정 역할을 했다. 원래 창펑자오는 FTX 거래소가 출범한지 6개월 만인 지난 2019년 거래소 지분 20%를 약 1억달러에 사들였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FTX가 영국령 지브롤터에 자회사 라이센스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지브롤터 규제 당국이 대주주인 바이낸스와 자오에 대한 세세한 정보를 요구하고 나섰다. 결국 자회사 설립을 성사시키기 위해 프리드가 바이낸스 지분을 21억 달러어치 암호화폐를 주고 매입했고, 이때 넘어간 FTT가 이번 사태의 도화선이 됐다. 자오는 프리드의 로비 능력이 결과적으로 자신과 바이낸스를 공격하기 위해 사용될 거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체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신뢰 잃은 크립토, 암호화폐 연쇄하락 방아쇠 될까
FTX 계열사들의 파산보호 신청과 함께 프리드가 만들었던 ‘FTX 왕국’은 사라졌다. 그러나 그 후폭풍은 이제 시작이다. FTX가 가지고 있던 업계 영향력을 감안했을 때, 연쇄적으로 파산하는 크립토 기업들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우선 지난 테라 사태 때 FTX의 지원을 받았던 가상자산 기업들이 재차 위험해질 것이다.
11일 미국 가상자산 대출업체 블록파이는 서비스와 고객 출금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 기업은 지난 7월 회사 인수를 조건으로 FTX와 최대 4억 달러의 운용 자금을 융통하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파산 신청 후, FTX 피인수를 목전에 두고 있던 보이저 캐피털도 다시 허공에 붕 뜬 상태가 됐다.
FTX와 샘 뱅크먼 프리드가 무너지면서 가장 든든한 지지자를 잃은 솔라나(SOL) 생태계도 위축이 불가피하다. 업계 최고의 인플루언서 중 하나였던 프리드는 그동안 솔라나를 가리키며 “가장 저평가된 코인”, “이더리움을 제치고 최대 디파이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투자를 독려해왔다.
창펑자오의 FTT 토큰 전량 매도 소식 전인 지난 7일께 까지만 해도 개당 33달러선을 유지하던 솔라나 코인 가격은 급락을 거듭하며 13일 현재는 14달러 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일주일 새 50% 이상 폭락한 셈이다. 같은 기간 솔라나 디파이의 총 예치자산(TVL)은 9억3704만달러에서 3억3772만달러로 64% 급감했다. 시가총액도 전체 암호화폐 중 7위에서 사태 이후 14위로 순위가 밀렸다.
크립토 시장 전체 투자심리(투심)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높다. FTX는 북미에서 가장 활발하게 마케팅 활동을 펼치던 거래소였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온체인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2020년부터 시작된 암호화폐 상승장은 미국 사용자들과 미국 기관투자자들의 진입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온다. FTX는 이들이 주로 사용하던 거래소 중 하나다. 그런 거래소가 파산해서 예치 자산이 묶이고 손해가 발생했으니 크립토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장기적으로 코인 가격을 위로 밀어올려 줄 엔진 하나가 큰 타격을 받은 셈이다. 암호화폐 트레이딩 기업인 제네시스 트레이딩은 FTX 계좌에 1억7500만달러(한화 약 2300억원) 어치의 자금이 묶였다고 밝혔다.
투심이 개선되지 않고 연쇄 도산이 계속 이어질 경우 비트코인 가격이 추가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 온체인 분석 기업 크립토퀀트의 애널리스트 맥디(MAC.D)는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20% 이상 하락하면서 채굴자들이 거래소로 비트코인을 이동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트코인 해시레이트(가상자산 업계에서 채굴 능력 측정에 쓰이는 지표로, 가상자산 채굴 작업이 이뤄지는 속도)는 사상 최고인 반면, 채굴량은 줄어들었기 때문에, 채굴자들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비트코인 매도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채굴자들의 비트코인 이동량이 더욱 증가할 경우 비트코인이 더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후폭풍의 끝에는 마침내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합리적인 규제가 자리하길 바란다. 로이터는 지난 11일 2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샘 뱅크먼 프리드가 10억~20억달러에 달하는 고객 자금을 회계처리 하지 않고 유용했다고 보도했다. 고객 자금을 알라메다 리서치로 빼서 사용한 것도 모자라 몰래 빼돌렸다는 얘기다. 프리드는 즉각 부인했고, 진실이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정상적인 금융 규제 환경에서는 발생할 수 없는 일들을 크립토 투자자들은 목격하고 있다. 이런 사태도, 이런 뉴스도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