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믹스 사태 보다가 '현타' 온 이유

위믹스 사태 보다가 '현타' 온 이유

요즘 한국 크립토 업계가 위믹스 상장폐지 여파로 시끄럽다. 위믹스(WEMIX) 토큰 가격이 하루만에 73% 폭락하면서 4000억원 가까운 가치가 증발했으니 손해로 속 쓰린 분들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사실 팩트를 놓고 보면 상당히 일방적인 사건인데 이 건을 놓고 여러가지 얘기가 나오는 이유도 거기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일이 진행된 순서는 지난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위메이드는 업비트 등 거래소들에게 위믹스 토큰 유통량 공시 내역을 제출한 바 있다. 대략 올해 9월말 기준으로 2.36억개의 위믹스가 시중에서 유통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연말 기준 유통량은 2.65억개로, 대략 9월부터 월평균 1000만개의 위믹스가 추가 유통될 계획이었다.

실제로는 계획처럼 되지 않았다. 위메이드의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9월말 기준 유통량은 2.79억개다. 거래소에 제출했던 계획보다 대략 15% 정도의 토큰이 추가로 유통된 것이다. 물론 3분기 보고서가 나오기 전까지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이 사실을 몰랐다.

일이 커진 것은 10월 말이었다. 10월 25일 기준, 암호화폐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1.23억개로 표시되던 위믹스 유통량이 다음날인 10월 26일에는 별안간 3.18억개로 바뀐다. 하루만에 유통량이 250% 늘어났다는 공시가 나온 셈이다. 앞서 거래소에 전했던 10월 말 유통계획보다는 30% 정도 불어난 수치였다.

코인마켓캡은 해당 코인 프로젝트와 협의하에 유통량 정보를 제공한다. 그런데 위믹스의 경우에는 아마 오랫동안 유통량 공시와 관련해 위메이드의 관리가 미비한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위메이드 측이 공개한 자료들을 시간 순서대로 놓고 보면, 10월 26일에 나온 공시가 실제 유통량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시중에 유통되는 코인 수량은 가격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요소 중 하나다. 그러나 투자자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위메이드가 전하는 위믹스 관련 유통량 정보를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상황이 이렇자 원화를 거래하는 국내 5개 암호화폐 거래소 협의체인 DAXA는 10월 27일 위믹스 토큰을 거래유의종목으로 지정했다.

국내 5대 암호화폐 거래소 협의체 DAXA. 출처=DAXA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그 신뢰를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신뢰를 무너뜨린 요인을 찾아서 제거하면 된다. 타이밍과 메시지도 중요하다. 금융처럼 사회적 신뢰가 중요한 분야에서는 구성원들의 공감을 살 수 있는 단호한 조치가 어느정도 필요하다. 

위메이드는 유의종목 지정 이후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어려운 길을 갔다. 이들은 향후 재단이 보유한 모든 코인을 신뢰할 수 있는 제3의 커스터디 업체에 수탁하겠다고 밝히고, 상시적으로 공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미 시장에 풀려버린 30% 상당의 위믹스 토큰 추가 물량을 되사들이기(바이백)는 어렵다고 밝혔다. 역사에 가정은 큰 의미가 없지만 만약 여기서 위메이드가 즉각적으로 초과 물량 전체에 대한 바이백을 했더라면 결과는 상당히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큰 실수는 위메이드 측이 공식 기자간담회에서 "(위믹스 토큰의) 상장 폐지는 상상하기 어렵고 가능성도 없다고 본다"는 발언을 했다는 점이다. 거래소의 첫 번째 책무는 선량한 투자자를 보호하는 것인데, 그런 측면에서 많은 국내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위믹스 토큰을 상장폐지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취지였다. 

우선 이 말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지는지는, 한국에서 금융투자자 보호를 담당하고 있는 금융감독원의 이복현 원장 최근 발언을 보면 판단이 쉽다. 이 원장은 최근 위믹스 사태에 대해 "유통 물량의 불일치 문제는 자본시장 개념으로 따지면 공시한 발행 주식수와 유통 주식수가 일치하지 않는 근본적 문제다"고 말했다. 

현행 자본시장법에서는 금융투자상품에 허위 정보를 공시하고 주가 상승을 위해 허위정보를 유포할 경우 무거운 징역형과 벌금형을 함께 부과할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다. 물론 코인은 현재 금융투자상품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이런 취지를 생각했을 때 투자자 보호에 적합한 조치가 무엇인지는 어느정도 명확해진다.

개인적으로는 위메이드의 이 발언이 나왔을 때, '뭔가 믿는 구석이 있나보다. 상장 폐지로는 안 가겠네'라는 생각을 했다. 거래소와 미리 얘기된 내용이 있지 않고서 조사를 받는 입장인 위메이드가 거래소 권한을 무시하는 이런 발언을 할 수는 없었을 거라고 봤던 것이다. 

나중에 상장폐지 이후 열렸던 기자회견에서 알게 되었지만, 위메이드에게는 정말 그렇게 확언할 만한 객관적 근거가 아무것도 없었다. 실무자의 실수로 선해하고 넘어갈수도 있는 유통량 공시 문제가 프로젝트 전체에 대한 신뢰로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실제로 DAXA는 위믹스 상장폐지 이유로 △중대한 유통량 위반 △투자자들에게 미흡하거나 잘못된 정보 제공 △소명 기간 중 제출된 자료의 오류 및 신뢰 훼손 등 3가지를 꼽았다. 

위믹스는 동네 양아치들이 선량한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끼칠 요량으로 만든 암호화폐가 아니다. 코스닥 상장사인 위메이드가 직접 홍보하고 자사 게임과 연결하고 유통했다. 그래서 이 문제의 본질은 신뢰다. 신뢰를 잃은 코인이 거래소에서 제외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위메이드도 그렇고 위믹스 상장폐지에 이의를 제기하는 다른 분들은 거래소 5곳의 협의체에 불과한 DAXA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상장폐지의 명확한 기준이 무엇인지를 거론한다. 맞는 얘기다. 내가 알기로 현재 국내 크립토 판에서 그런 필요성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그건 위믹스의 상장폐지와는 큰 상관이 없다. 이미 DAXA 참여 거래소 5곳 모두가 각각 위믹스의 상장폐지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DAXA가 어떤 결론을 내렸든 위믹스는 상장폐지됐을거라는 얘기다. 

내 지인은 위메이드 측이 위믹스 상장폐지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고 밝혔던 날, 그 말을 믿고 위믹스 토큰을 샀다. 소액이라 괜찮고 수업료라 생각한다며 웃으며 손사레를 치지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싶어 마음이 쓰리다. 그는 무슨 수업에서 뭘 배웠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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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ie La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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