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뱅크가 망한 3번째 이유와 은행의 미래

실리콘밸리뱅크가 망한 3번째 이유와 은행의 미래
미국 캘리포니아주 소재의 실리콘 밸리 은행

한국 시간으로 3월 10일 오전쯤이었던 것 같다. 스마트폰에 굵은 대문자로 IMPORTANT MESSAGE라는 텔레그램 푸시 알림이 떴다. 내용은 장안의 화제였던 실리콘밸리 은행(SVB)에 입금한 돈이 있으면 즉시 옮기라는 것이었다. 주요 경제지의 기사 링크와 함께 왜 즉시 옮겨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도 적혀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내가 이날 이 메시지를 4개 받았다는 것이다. 직업적으로 컨설팅을 하다보니 아무래도 여기 저기 외국 회사의 업무용 챗방에 꼽사리로 들어가 있는데, 각각 다른 발신자에게 비슷한 제목의 비슷한 메시지가 날아왔다. '실리콘밸리 은행에 뭐라도 있으면 얼른 탈출하세요.ㅇㅇ'

아. 이건 뭐 민간발 재난 문자 같은 건가. 외국 애들도 SNS 쓰는 게 크게 다르지 않네ㅋㅋ크크 거릴 일이 아니었음을 퇴근 후 외국 뉴스를 보며 깨달았다. 그날 하루동안 SVB에서 빠저나간 돈이 420억달러(한화 55조4800억) 였다고 한다. 은행 전체 예금의 25%가 하루만에 일사분란하게 빠져나간 것이다. SVB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파산 절차를 시작했다.

그날 새벽, 트위터는 아수라장이었다. 미국 16위 대형 은행이 자빠졌다. 금융위기 오는 것 아니냐.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이 죄다 여기에 돈 맡겼다던데 다 같이 망하는 거 아니냐. 예금자 보호 보험도 거의 안들었다던데. 뭐? 거기에 USDC 예치금이 들어있어? 그럼 코인도 다같이 망하는 거냐?!

사람들이 흥분한 만큼 새로운 글이 채워지는 속도도 빨라졌다. 처음에는 뭔 차트도 나오고 숫자도 나오고 출처도 나오고 하더니, 몇 시간 지나니 그냥 뇌피셜 잔치였다. 다들 겁에 질려있었다. 나는 컨설팅도 하지만 크립토도 하다보니 USDC 관련 피드도 함께 봐야 했다. 아주 양면으로 죽을 노릇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소재의 실리콘 밸리 은행.

 SVB가 망한 이유는 대략 여섯 줄로 정리할 수 있다.

1. 코로나 시기에 투자가 폭증하면서, 스타트업 발 예금이 급증

2.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어서 장기 채권에 투자

3. 지난해 미국 정책금리 급등. 금리가 오르니 사놓은 채권 가격은 내려감

4. 손실 평가된 장기 채권을 들고 버티다가, 낮아질대로 낮아졌을 때 대량 손절

5. 이걸 본 스타트업 사람들이 예금을 찾아가기 시작. 이틀만에 전체 예금의 25%가 빠짐

6. 파산 신청

망함의 첫째 이유로는 일단 SVB의 잘못된 투자, 두 번째 이유는 미 연방준비 제도의 가파른 금리인상을 꼽을 수 있겠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어떤 은행도 하루 이틀 새, 예금자들이 달려들어 25%의 예금을 찾아가면 망한다는 사실이다. 이게 세 번째 이유다. SVB의 파산은 사실 은행 스트레스 테스트의 신기원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SVB가 망한 이유가 고객의 특성에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실리콘밸리의 재무담당자들이 SVB의 고객들이었다. 이들은 정보에 민감하고 24시간 SNS로 연결되어 있다. 10일 내가 구경했던 메시지는 아마 그 네트워크의 끝자락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을 확장해보면, 집단으로 돈을 찾아가는 행위가 꼭 엄청 똑똑한 애들이 모여야지만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닌 것 같다. 엄청난 수수료가 드는 것도 아니고,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다. 뉴스를 챙겨보는 꼼꼼함과 친구를 믿는 마음, 그리고 SNS만 있으면.

주말이 지나니 미국 정부가 SVB에 물린 모든 예금자들의 예금을 보호해 주는 '특급 대책'을 내놨다. 기업 차원의 구제금융은 없다고 하니 예금자를 제외하고 누구는 망하고 누구는 돈을 잃겠지. 장기적으로 보면 은행은 또 다른 차원의 건전성 규제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친구가 없고, 뉴스를 안 보고, SNS를 안 하는 사람을 은행에서 좋은 고객으로 분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객님? 트위터나 텔레그램 혹시 쓰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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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ie La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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