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걸 메타버스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요즘 '메타버스(Metaverse)'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어느날 부터인가 유튜브를 점령하더니, 서점가를 뒤엎고, 주식시장을 달구고 있다. 글로벌 스포츠 기업인 나이키가 메타버스 안에 점포를 내겠다고 하고, 공룡 SNS 기업 집단인 페이스북은 사명을 아예 메타(meta)로 바꿔버렸다. 이 모든 상황이 최근 1년 안에 벌어졌다.
메타버스는 1992년 SF 소설 '스노우 크래쉬(Snow Crash)'에서 처음 등장한 신조어로 '초월'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메타(Meta)와 '우주'라는 뜻의 유니버스(universe)를 합친 말이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세계와는 또 다른 세계를 의미하며, 실제 오프라인 공간과 대비해 확장된 가상공간을 일컫는 표현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등장 후 30년의 세월을 넘어 갑자기 메타버스 담론이 유행하게 된 표면적인 배경에는 인류가 강제로 맞닥뜨렸던 비대면 생활이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여파로 사람들이 직접 만나기 어려워지면서 교류 방식이 예전보다 디지털 친화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일어난 변화라는 분석이다. 가상 공간에 오프라인을 재현하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기술의 발달도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을 메타버스를 유행시킨 본질적인 요소들이라고 지목하기는 좀 부족한 느낌이 있다. 메타버스 담론의 생명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NFT(Non fungible token, 대체불가능 토큰)를 비롯해 이슈가 흘러온 과정을 좀 더 다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메타버스 = '가상공간 + 생활'
메타버스를 설명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 단어에 크게 두 가지의 맥락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할수 있다. 하나는 가상공간, 두 번째는 생활이다. 간단히 말하면 가상공간에서 우리 생활의 대부분이 이뤄지게 되는 세계적 변화를 메타버스라고 부르는 것이다.
사실 메타버스 담론이 나오기 전에도 우리는 가상공간을 꾸준히 이용해 왔다. 따지고 보면 컴퓨터 게임, 인터넷, SNS 등등이 모두 가상의 공간을 활용하는 메타버스의 일종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동안 메타버스를 그다지 실감하지 못했던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상공간이 생활이 이뤄지는 핵심적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리니지' 등 상품성이 좋은 게임들이 성공을 거두는 과정에서 가상공간에 빠져 사는 소수의 마니아들이 양산되는 경우는 있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생활의 대부분을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보내는 사람들을 우리는 '게임 중독'이라고 불렀다. 하루종일 SNS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SNS 중독'이라고 비하했다. 이러한 인식의 배경에는 인간 생활의 주무대가 당연히 오프라인 세계여야 한다는 당위가 깔려 있다.
왜 인간은 가상공간에서 생활하기 어려울까. 가장 큰 장애 요소는 돈이다. 가상공간에서 살더라도 오프라인 세계에 있는 본체의 생명 활동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상공간에서는 돈을 버는 경제적 활동을 하기가 어려웠다. 메타버스라는 개념이 발명된 1992년 이후 가상공간을 활용한 숱한 서비스들이 나왔었지만 이 장벽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그러나 최근 NFT와 '플레이투언(Play to Earn, P2E)'이라는 게임 장르가 등장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이 벽이 무너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NFT, 메타버스 시대의 주춧돌
NFT란 블록체인에 저장하는 방식의 디지털 권리증서를 말한다. 이 증서에는 디지털 주소를 부여할 수 있는 형태의 콘텐츠 위치와 그 소유권자가 누구인지 등의 정보를 담을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블록체인에 저장되기 때문에 증서가 한 번 발행되면 해당 데이터를 임의로 삭제하거나 위조할 수 없다.
오프라인 생활에 익숙한 이들은 이 설명을 보고 '부동산 등기소에 등록된 집문서, 땅문서와 비슷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 있겠다. 그 말이 맞다. 다만 NFT가 발행되는 디지털 가상공간에는 권리증서의 효력을 보증해주는 정부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부동산 등의 자산은 경제적 가치를 저장하는 수단이자, 경제 활동의 기반 역할을 하는 시장경제 체제의 핵심적인 구성요소 중 하나다. 그러나 그동안 가상공간에서는 이걸 구현하기 어려웠다. 정부 등 압도적인 권력기관이 없는 상태에서는 소유권 등 권리 관계에 대한 교통 정리와 보증이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당연하겠지만 내가 구입한 무언가가 확실히 내 것이 된다는 보장이 있어야 사람들이 지갑을 열고, 종국적으로는 자산이 만들어질 수 있다. 권리 관계가 애매하면 자산은 생성되기 어렵다. 자산이라는 매개체가 없으면 결국 메타버스와 현실 세계 간, 부의 이동도 상당히 제한적인 모양새가 된다. 그리고 부의 이전이 없으면 사람이 생활 공간을 쉽사리 옮기기 어렵다. 그동안 메타버스 담론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렇다 할 만한 설득력을 갖지 못했던 숨은 이유다.
그런데 NFT가 등장하면서 이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NFT는 가상공간이라는 무주공산에서도 오로지 블록체인이라는 간단한 장치 하나로 자산들의 권리관계를 안전하게 증명할 수 있다. 자산의 희소성을 보장하면서 원본성을 증빙할 수 있고 데이터 무결성도 담보된다. 가상공간에 형성되는 모든 자산을 NFT를 이용해 정리해 나간다면 종국적으로는 실제 세계와 비슷한 체계를 가진 새로운 성격의 가상 공간을 만들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이러한 본질적인 변화를 다른 곳보다 빨리 포착했다. 그리고 게임이라는 사용례를 통해 풀어내기 시작했다. 2017년에는 최초의 NFT 게임인 '크립토키티(CryptoKitties)'가 출시됐다. 이 게임에서는 가상의 고양이를 수집·육성하고 거래할 수 있는데, 가장 비싼 고양이는 2018년 9월 기준 한화 약 1억 8000만원에 거래됐다. 그리고 이 기록은 이후 P2E게임이 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NFT가 띄운 공, P2E 분야에서 터지다
2018년 출시된 NFT 기반 게임인 엑시 인피니티(Axie Infinity)는 P2E 장르의 대명사로 꼽힌다. 구조는 간단하다. 이 게임에는 '엑시'라는 NFT 캐릭터가 있는데, 이걸 잘 키워서 빠르게 던전 몬스터를 무찌르거나 다른 사용자와의 전투에서 승리하면 된다. 전투에서 이기거나 퀘스트를 성공시키면 스무스러브포션(SLP)라는 암호화폐를 받을 수 있고, SLP는 바이낸스 등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법정통화로 교환할 수 있다. 앞서 설명했던 크립토키티에 암호화폐와 어드밴처 게임적인 요소가 추가된 모델이다.
이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은 열심히 게임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이다. 게임머니가 아니라 실제 법정통화를 말이다. 엑시 인피니티를 만든 스카이마비스의 제프리 저린 공동 설립자는 지난 9월 국내 컨퍼런스에 참석해 "전체 이용자 중 60%가 필리핀 이용자들이고 그들이 월평균 70만원~100만원 정도의 수익을 거둬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1년 기준 필리핀 최저임금이 하루 9500원에서 1만3000원 사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게임이 상당한 돈벌이가 되는 셈이다.
이 게임 내에서 가장 돈을 쉽게 버는 방법은 다른 사용자와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능력치가 좋은 엑시를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엑시는 엑시끼리의 교배를 통해 얻을 수 있고 교배를 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필요하다. 출산 경험이 없는 두 마리의 엑시를 이용해 한 마리의 엑시를 얻으려면 1엑시인피니티샤드(AXS)와 600SLP가 있어야 한다. 25일 기준 한화로 약 20만원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렇게 만든 엑시는 자신이 사용하거나 엑시인피티니 NFT 마켓을 통해 타인에게 판매할 수 있다.

엑시는 최대 일곱번까지만 교배가 가능하기 때문에, 교배 기회를 다 사용했는데도 원하는 엑시를 얻지 못하면 남이 파는 엑시를 구입해서 써야 한다. 이런 세세한 설계 위에서 보통 게임을 시작할 수 있는 수준의 '보급형' 엑시가 30~40만원 선에 거래된다. 한 개에 30만원이 넘는 게임 캐릭터를 누가 살까 싶겠지만 거래가 꽤 활발하게 벌어진다. 이 게임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최소 3마리의 엑시가 있어야 하고, 좋은 엑시를 보유하면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엑시 인피니티의 게임성이 매우 뛰어나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게임의 파괴력은 숫자들이 말해준다. 2018년 이후로 거래된 엑시 NFT 매출은 약 20억달러(한화 2조3000억원) 정도다. 하루 이용자 수는 200만명에 육박한다. 엑시 인피니티의 거버넌스 토큰인 AXS의 시가총액은 25일 기준 약 10조원에 달한다. 전체 암호화폐 중 25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자 국내 게임사들도 앞다투어 P2E 게임 개발 계획을 언급하고 있다. 다른 곳보다 앞서 일찌감치 글로벌 시장으로 뛰어든 위메이드는 P2E 게임인 '미르4 글로벌'의 성공으로 연초 대비 주가가 6배 상승했다.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도 블록체인과 NFT를 게임과 연계하는 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내년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내년부터는 전통적인 게임 명가들이 P2E 분야에서 본격적인 경쟁을 벌이기 시작할 것이다.

P2E 게임의 성공이 메타버스 담론에 시사하는 바는 간단하다.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이전과는 달리 온라인에 중독된 상태에서도 경제적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메타버스로의 전환에 걸림돌이 됐던 고질적인 장애 요소를 극복할 수 있는 기본 환경이 구축된 셈이다. 각종 테크 기업들이 메타버스를 말하며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화려한 3D 영상이나 가상 현실 디바이스는 메타버스의 본질이 아니다. 그들은 P2E 게임들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 천천히 우리 옆으로 다가올 도구에 불과하다.
이런 변화들이 아직 체감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현행 게임산업법에 따르면 환전이 가능한 게임은 국내에서 유통이 불가능하다. 아이피 우회 등의 편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한국 사람들은 P2E 게임을 제대로 즐기기 어렵다. 오프라인 세상을 중심으로 살아갈수밖에 없다는 오래된 인식을 깰 만한 경험을 하기가 어렵다.
당신이 누구든, 무엇을 메타버스라 부르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미 가상 공간과 불가분의 관계다. 과거에는 집안 어르신이나 동네 이웃, 학교 친구 등 육체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오프라인 공동체들이 중요했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공동체를 찾는다.
과거에는 주변에 싫은 사람이 있어도 어느정도 참고 넘기는 것이 미덕이었지만 요즘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물리적인 내 주변 말고도 온라인을 통해 얼마든지 준거집단을 디자인하고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에서는 싫은 사람을 삭제하기 어렵지만 온라인에서는 가능하다.
이미 온라인과 디지털이 아니면 관계 맺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 버렸다. 인간 사회와 담론의 미세한 성향 변화를 가장 잘 파악할수밖에 없는 플랫폼인 페이스북이 메타버스행을 가장 먼저 천명했다는 점은 다분히 상징적이다. 그들의 과감한 결정에는 당연히 당대 사회와 구성원들에 대한 데이터들이 작용했을 것이다.

위 그림은 메타버스가 유행한 이후 나온 일종의 풍자다. 이 글을 쓰게 되었던 계기기도 하다. 감자도 메타버스라고 부르고 있다는 대목에서는 웃을 수 밖에 없지만 다른 항목들은 사실 언뜻 웃기 어렵다. 메타버스라는 단어 자체가 그만큼 포괄적이고 거대하기 때문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이 메타버스냐가 아니다. 메타버스로 상징되는 이 변화가 상당히 고정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실제로 진행되고 있으며, 인간 세계에 큰 영향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아이가 인터넷을 오래 하고 있으면 부모에게 혼이 났다. 우리의 주된 생활공간이 오프라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타버스 시대에는 인터넷을 오래한다는 이유로 자녀를 혼내는 부모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인터넷의 의미가 선택 가능한 것에서 당연하고 필수적인 무엇로 바뀌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메타버스라 부르든 감자라 부르든 그 변화는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