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성 유럽뽕은 왜 위험한가
[리뷰] <헤겔, 아이티, 보편사>

<헤겔, 아이티, 보편사>. 이름부터 알쏭달쏭 간지가 폭발하는 이 책은 수잔 벅모스라는 사회학자가 쓴 일종의 팩트폭행용 흉기입니다.
제목이 약간 난해하니까 하나씩 풀어볼까요. 우선 헤겔은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이고, 아이티는 카리브해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입니다. 좀비 덕후 정도가 이 나라를 부두교와 연관해 겨우 기억할 정도로 존재감이 크지 않죠. 그러나 18세기에는 달랐습니다. 당시 아이티는 고가의 설탕이 쏟아지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식민지였습니다.
식민지가 맞긴 한데, 당시 항해 기술은 지금보다 많이 열악했던 탓에 실시간 관리는 사실상 어려웠지요. 대서양 건너에 있는 프랑스가 물리적으로 자신들을 콘트롤 할 수 없는데다, 돈도 많이 벌어다주는 자신들이 왜 노예로 살아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던 이동네 사람들은 결국 1791년부터 프랑스를 들이받기 시작해 1804년도에 무장혁명을 일으키고 독립을 쟁취합니다. 아이티는 그렇게 세계 최초의 흑인 공화국이자 남아메리카 최초의 독립국가가 되죠.
당시 유럽은 기묘한 형태의 모순적 사상들이 동거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계몽주의와 인종주의입니다. 한쪽에서는 로크나 볼테르 같은 사상가들이 인류의 진보와 계몽을 말하며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인종주의를 바탕으로 한 노예제가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죠. 아. 아니지. 인종주의의 경제적 성과가 깔려있던 덕분에 계몽주의가 발전할 수 있다고 해야 적확한 서술이겠군요.
아무튼 이런 와중에 프랑스 대혁명이 터집니다. 자유, 평등, 박애의 기치가 전 유럽으로 퍼져나가는 가운데, 사람들은 딜레마에 빠집니다. 이거 혁명을 해놨으니 명분상 노예제 폐지를 하긴 해야겠는데 그럼 그동안 안정적으로 빨고있던 단물이 뚝 끊긴다는 거였죠. 이런 상황에서 터진 아이티혁명은 세계사적으로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고. 덕분에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은 격으로 프랑스 대혁명은 유럽 최초의 노예제 철폐라는 명예를 얻게 됩니다.
저자인 수잔 벅모스는 이런 뻑적지근한 사건이 동시대 최고 진보 지성 중 하나였던 헤겔에게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을 단서로 이 책을 드리블해 나갑니다. 헤겔의 주요 개념중에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라는 게 있는데, 읽어보면 개념 자체가 아이티 혁명에 상당한 영향을 받은 듯 보이고, 아이티 혁명 자체가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의 매우 훌륭한 실사례임에도 헤겔은 아이티 혁명의 '아'자도 언급하지 않거든요. 물론 헤겔 본인은 미처 느끼지 못했을 수 있지요. 하지만 후대의 헤겔 연구가들조차 아이티 혁명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벅모스는 소름이 돋는것을 느낍니다. 아. ㅅㅂ 이거 뭔가 있다.
벅모스의 결론은 아이티 혁명이 의도적으로 쌩깜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서구의 찬란한 근대를 얘기하는데 상당히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19세기는 제국주의의 팽창으로 인한 본격적인 식민지 무역과 함께 '자유'라는 사상이 폭발하던 시기였거든요. 노예 혁명인 아이티 혁명이 식탁위에 있다면 우리는 당연히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하겠죠. 왜 본국의 사람들은 자유를 누리는데, 식민지의 사람들은 철저히 예속되어 이제 막 시작된 산업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야 하는가. 식민지의 자원과 노동이 탄탄히 쌓아놓은 경제적 토대 위에서, 본국의 지식인들이 말하는 자유란 과연 어떤 진정성을 가지는가.
하지만 당시 유럽의 지식인들은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난 그런 건 전혀 알지 못했어'라는 태도를 취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수잔 벅모스는 당시 아이티 혁명의 파급력을 감안했을 때, 그건 가능성이 없는 일이라고 일축합니다. 그리고 유럽의 지식인들이 의도적으로 아이티 혁명을 못 본 척 했다고 지적하지요. 아이티 혁명을 언급하는 순간 유럽 철학의 모순과 지식인들의 이중적 태도가 함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수잔 벅모스는 이런 지적의 끝자리에 헤겔의 보편사 개념을 갖다 놓습니다.
아이티 혁명 당시 당대 최고의 지성이었던 헤겔은 역사를 정신의 자기 실현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즉, 역사란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세계정신(world spirit)이 자신의 자유를 인식하고 실현해나가는 이성적이고도 필연적인 과정이라는 것이죠. 그는 역사의 정점은 근대 유럽, 특히 게르만 세계에 있다고 설ㄹ명하면서, 비 유럽 문명과 역사는 미숙하거나 정체된 것으로 묘사했죠. 이 개념은 근대 이후 이어진 유럽의 식민주의에 역사적 의미와 방향성을 부여해줬습니다. 유럽에서 하는 것들이 완성형이고 옳다는 느낌적인 느낌을 확산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사실 이런 흐름은 오늘날에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서구의 철학과 사상은 상당히 좋은 대접을 받으며, 여전히 아이티 혁명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지요.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배운 놈들이 자기한테 불리한 건 말을 안하니까. 벅모스는 이런 점을 날카롭게 짚으며 조자룡처럼 여기저기 막 휘젓습니다. 그리고 보편사를 유럽 중심주의가 아닌, 다양한 문화와 역사적 경험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공통의 역사로 되돌려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몇 년 전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지자 인권 선진국이라는 미국, 유럽의 반응이 볼만했습니다. 자유와 인권은 어디가고 비상사태가 터지자 중국 국적자들을 아예 자신의 나라에 들어올수 없도록 차단해버렸죠. 일시적으로 유럽 현지의 동양인 혐오는 도를 넘는 수준으로 높아졌습니다. 이런 풍경 속에서 철학 수입국이자 사상 수입국 국민인 한국 사람들은 좀 더 깊은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갓양놈'들이 왜 이러는가. 왜 세상은 우리가 배운것과는 다르게 돌아가는가. 같은 물음들이죠.
최근에는 비슷한 상황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수십년 동안 미국에 쌓여 왔던 민주주의 시스템들을 부정하면서 그것들을 빠르게 분해해가고 있지만, 정작 미국의 민주주의는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죠. 어쩌면 트럼프 시대 이후 민주주의의 정답태는 더이상 미국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많은 것들이 바뀌는 혼란스러운 시기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왔던 것들을 의심해보면서 눈을 크게 뜨고 대안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 책이 좋은 영감이 되어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