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로 전락한 크립토 교주, 권도형의 '나비효과'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지난 5월 벌어진 테라·루나 사태 이후, 여러 국가의 수사당국과 크립토 커뮤니티의 추적을 피해 도피행각을 벌이던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지난 3월 23일  발칸 반도의 작은 나라인 몬테네그로 포드리고차 공항에서 체포됐다.

그는 전용기를 타고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로 떠나려다 현지 경찰에 발목이 잡혔다고 알려졌다. 하필 위조한 코스타리카 여권이 걸려버린 탓이었다. 곧장 공항에 세워진 전용기를 덮쳐 권 대표를 체포한 현지 경찰은 그가 벨기에 여권도 가지고 있었다고 전했다. 코스타리카 여권 대신 그걸 썼더라면 현행범 신세를 면할 수 있었을까.

권 대표로 추정되는 인물이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됐다는 소식이 돌자 글로벌 크립토 커뮤니티는 열광했다. 테라·루나 사태로 큰 손실을 본 투자자 4400여명이 한 때 그를 찾기 위해 URG(UST Restitution Group)라는 사설 추적대를 꾸렸을 정도니 오죽했을까. 그는 한 때 많은 투자자들 위에 교주처럼 군림했지만 이제는 크립토 업계의 공공연한 천덕꾸러기 신세다. 그리고 이제 법의 심판을 앞두고 있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몬테네그로 경찰에게 체포당해 이송되고 있다. 출처=DL뉴스

1. 테라·루나 사태가 뭐였더라?
권도형은 테라라는 암호화폐 프로젝트를 만든 사람이다. 테라 프로젝트의 가장 큰 특징은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이다. 스테이블코인이란 '1개=1원', '1개=1달러' 식으로 특정한 법정 통화의 가치를 추종하도록 만들어진 코인을 말한다.

물론 설정이 이렇다는 것 뿐이지 자동으로 가치가 연동되지는 않는다. 스테이블코인의 관건은 코인의 가치를 어떻게 일정하게 유지시키느냐에 있는데, 보통 발행량 만큼의 가치를 가진 담보물을 은행에 예치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테라처럼 이런 담보물 없이 시장의 매수·매도를 유도하는 알고리즘 만으로 이를 가능하게 하는 스테이블코인을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이라고 한다.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 테라USD(UST)와 루나(LUNA) 코인의 교환 시스템. 출처=코인텔레그래프

담보가 없어도 일정한 가치를 유지하는 코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테라는 성질이 다른 두 개의 코인을 사용했다. 메인 코인인 루나(LUNA)와 스테이블코인 '테라USD'를 이용해 독특한 교환 시스템을 고안했는데, 이게 시장에 먹혀들었다. 결과적으로 2019년에 출시된 테라 프로젝트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2022년 4월 기준 루나 코인이 시가총액 53조, 테라USD 코인이 시가총액 24조원 가량을 찍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5월 초 테라USD 코인의 가치가 돌연 폭락하면서 약 77조원 상당의 코인 가치가 며칠만에 제로로 수렴하며 공중분해되는 일이 벌어진다. 이게 테라-루나 사태다. 
폭락의 구체적인 전모가 궁금하다면 아래 참고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참고자료 : 1/10 토막난 시총 80조 코인 '테라'와 그 후에 찾아올 것들 


2. 시장 원리로 가격이 유지되는데 코인이 왜 하루 아침에 무너져?
테라 사태 이후 전세계 암호화폐 보안 전문가들이 관련 전자지갑을 추적했다. 전자지갑이란 우리가 은행에서 사용하는 계좌 같은 존재다. 다만 일반 금융과는 다르게 돈의 흐름을 누구나 추적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테라 사태를 촉발했던 폭락이 일어나던 날, 각기 다른 거래소에서 테라USD를 뭉텅이로 내다 파는 방식으로 두 차례 일종의 '금융 공격'이 이뤄졌다. 일부 분석가들이 이 지갑을 거듭해 추적하다 보니 공격자가 사용한 지갑이 테라 프로젝트를 개발·운영하는 테라폼랩스와 연관성이 있는 지갑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테라 측에서 고의로 이번 사태를 일으켰다는 의혹이 점점 무게를 받고 있다. 이게 권도형 대표가 각국 수사기관들의 추적을 받게 된 배경 중 하나다.  

*참고자료 : 99.99% 폭락한 '테라 사태'...자작극이었을까? 

3. 권도형은 구체적으로 어떤 범죄 혐의를 받고 있나요?
일단 몬테네그로에서는 공문서 위조 혐의를 받고 있다. 사실 위조 여권을 사용하다가 현장에서 체포되었기 때문에 이제 본격 범죄자가 되었다고 생각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몬테네그로는 공문서 위조에 대한 결론을 내린 후 송환 요청을 한 다른 국가에 권 대표의 신병을 인도할 예정인데 지금 미국, 한국, 싱가포르가 서로 자기한테 보내달라고 치열한 경쟁전을 벌이는 형국이다. 

미국은 지난 3월 24일에 뉴욕 남부연방지방검찰이 증권 사기, 시세조작 등 8개 혐의로 권 대표를 기소했다. 한 달쯤 전인 지난 2월 16일에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미등록 증권 판매, 사기 등의 혐의로 권 대표와 테라폼랩스에게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두 개의 소장에 모두 등장하는 대표적인 혐의는 다음의 세 가지다. 

(1) 테라폼랩스 일당이 테라USD의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코인을 판매했다.
(2) 엄연히 증권인 코인을 SEC 승인을 받지 않고 판매했다.  
(2) 2021년 5월, 미국 소재의 한 투자회사와 만나 테라USD 시세조종을 진행했다. 

정리하자면, 시장에서의 매수·매도로 자연스럽게 1개=1달러의 가치가 유지되는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이라고 홍보하면서 토큰을 판매해놓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위적으로 가치가 부양되도록 가격 조작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건 수사기관 등이 두고 있는 혐의이고 진실성 여부는 법원에서 판단하게 될 문제다. 

한국 검찰도 자본시장법상 사기적 부정거래, 시세조종 등의 혐의로 권 대표의 기소를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테라폼랩스의 본사 소재지인 싱가포르 수사당국에서도 그에게 800억원 규모의 사기 혐의를 적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4. 범죄 혐의가 인정되면 어떻게 되나요?
거액의 벌금이나 민사 배상 등의 판결이 내려질 수 있다. 우선 SEC가 지난달 제출한 소장에 적어놓은 피해 규모가 최소 400억달러(약 52조원)에 달한다. 통상 SEC가 이런 류의 소송에서 승리할 때, 민사 배상으로 피해 규모에 몇 배에 해당하는 금액이 산정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 재판을 받을 경우에는 배상 명령과 함께 100년 이상의 징역형이 내려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미국은 대규모 경제 범죄를 무겁게 처벌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에는 투자자 3만7000명을 상대로 총 650억달러 규모의 사기를 쳤던 버나드 메이도프에게 150년형이 선고되기도 했다. 전 나스닥증권거래소 위원장을 역임한 신분으로 역대 최대 규모의 폰지 사기를 쳐 유명해진 메이도프는 복역 중 감옥에서 사망했다.

사례는 많다. 2012년에는 70억달러 규모의 사기를 쳤던 앨런 스탠퍼드 전 스탠퍼드 인터내셔널 그룹 회장도 은행에 보유하고 있던 예금 59억달러를 과징금으로 내고 징역 110년 형을 받아 복역 중이다. 미국 뉴욕에서 사업을 하던 숄람 와이스라는 인물은 4억5000만달러 사기를 벌인 혐의로 징역 845년 형을 받고 2000년부터 복역 중이고, 노먼 슈미트라는 사기범도 2008년 330년 형을 선고받고 텍사스 소재 감옥에 갇혀 있다. 권 대표가 입힌 400억달러 피해가 입증된다면  미국에서 100년 형 정도의 징역형은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국내법상으로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가 입증되면 최대 무기징역이 가능하지만, 실제 선고되는 형량들은 그보다 한결 가볍기 때문에 미국보다는 더 처벌이 가벼울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미국 검찰과 SEC의 경우에는 이미 권 대표와 테라폼랩스가 2021년 테라USD 시세조종에 참여한 구체적인 정황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 반면 국내 검찰은 권 대표의 신병을 인계받아 본격적인 추가 수사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 검찰 수사 관련해서는 권 대표와 신현성 공동대표 등 테라를 만들었던 내부 관계자들이 코인 판매로 막대한 차익을 남겼다는 점 정도가 공개된 바 있다. 검찰은 이를 부당이득으로 보고 지난해 신현성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이밖에도 이것이 우발적으로 벌어진 금융 사고인지, 아니면 고도의 계산된 사기인지를 밝혀내는 부분이 까다로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검찰은 테라폼랩스와 권 대표 등 관계자들이 테라와 루나의 폭락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투자자에게 고지하지 않고 발행·판매했다고 보고 있다.

한국 검찰은 권 대표와 함께 신현성 전 테라폼랩스 공동대표에 대한 기소를 준비하고 있다. 출처=테라폼랩스

5. 미국은 왜 한국 국적자 권도형을 데려가려고 하는 건가요?
기본적으로는 사법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만, 권도형 송환은 요즘 미국에서 벌어지는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최근 미국에서 백악관을 중심으로 '크립토 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3월 20일 백악관이 미 하원에 제출한 연례 '대통령 경제보고서'를 보면, "암호화폐는 소비자와 투자자에게 해로울 수 있다"는 대목과 함께 권 대표가 만든 테라USD와 테라·루나 사태가 소개된다. 백악관은 이 보고서에서 암호화폐 현황을 분석한 챕터에서만 사기(fraud)와 연관된 표현을 9차례 쓸 정도로 강력한 문제의식을 표명했다.
 
실제로 테라는 글로벌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미국 내 피해자 숫자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권 대표를 직접 데려와 중형을 적용해 사법 처리할 경우 미국 크립토 업계에 대한 규제 여론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 

현재 일부 크립토 감독기관이 벌려놓은 일들을 보면 SEC는 권도형이 특히 더 필요한 상황이다. SEC는 요즘 일반 코인, 스테이블코인, 암호화폐 스테이킹 등 다양한 분야에 현행 증권법 기준을 들이밀며 마구잡이식 소송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 소송이 실제 SEC가 원하는 규제효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법원이라는 산을 넘어야 하는 문제가 있다. 현재 이 분야는 뚜렷한 판례가 없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상하기 어렵다.

유리한 판례 확보가 필요한 SEC 입장에서는 테라와 권 대표를 매우 요긴하게 쓸 수 있다. 테라 프로젝트는 아주 특이하게도 한 프로젝트 안에 일반 코인(루나), 스테이블코인(테라USD), 암호화폐 스테이킹, 디파이 등이 모두 들어있기 때문이다. SEC는 권도형과 테라폼랩스가 경영 활동의 다양한 지점에서 미등록증권 판매 등 증권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권 대표가 SEC와 적절히 타협해 혐의를 인정해버릴 경우, 크립토 업계에는 매우 불리한 판례가 남을 수 있다. 암호화폐 업계 전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다.

*참고자료 : SEC의 ‘권도형 소송’, 방패없는 테라로 업계에 선례 남기나

6. 권도형 도피자금 '보물찾기' 가능성도
권 대표는 지난해 수사기관이 포위망을 좁혀오자 거주하던 싱가포르를 떠나 세르비아로 향했다. 이렇게 기약 없는 도망자 생활을 하려면 당연히 도피 자금이 필요하다. 테라·루나 사태 이후 전세계 유명 지갑 추적 기업들이 앞다투어 권 대표의 자금 유용 흔적을 추적했고, 사태 전후로 도피를 염두에 둔 대규모 자금들의 흐름이 포착된 바 있다. 이중 일부는 언론을 통해 공개되어 있다.

우선 지난해 1, 4, 5월 세 차례에 걸쳐 6700억원어치 스테이블코인(USDT)를 테라폼랩스가 바이낸스 거래소로 옮긴 흔적이 있다. 사태가 있었던 5월에 830억원치 USDC를 추가로 바이낸스 거래소로 옮겼다. 테라사태 이후인 10월 3일에는 '루나파운데이션가드'라는 테라 관련 비영리단체 지갑에서 1550억원 정도의 비트코인을 정체불명의 지갑으로 옮긴 내역도 있다. 앞의 2개는 바이낸스 거래소가 협력하면 바로 출처와 용처를 알 수 있다. 마지막 내역도 본인 수사 과정에서 공개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 돈들 이외에도 몇십억 규모의 '자잘한' 자금 이체 내역들도 관측된 바 있다. 전부 합치면 대략 최소 1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물론 이중 일부는 지난 6개월동안 도피 과정에서 사용했을 테지만, 찾으면 찾는 족족 벌금 또는 추징금의 형태로 국고 환수가 가능한 부분이다. 

*참고자료 : 구금된 권도형에게 남은 자산은? 

7. 권도형 '나비효과', 크립토 업계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권 대표는 일단 몬테네그로 당국에서 공문서 위조 관련  사법 절차를 받아야 한다. 이후에는 신병인도를 한 나라로 넘겨지게 되는데, 현재 한국, 미국, 싱가포르 세 나라가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한 상태다. 최종 결정은 몬테네그로 당국이 누구한테 넘겨주느냐에 달려 있다.

미국으로 갈 경우 추가 수사 및 기소 과정에서 두 가지 쟁점이 드러날 수 있다. 하나는 시세조종이다. 현재 테라폼랩스의 의뢰를 받아서 시세조종을 수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J사가 크립토 업계에서 시장조성자(market maker)로 상당히 유명한 업체다. 테라폼랩스 측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이 J사 역시 공범이므로 추가 수사가 불가피하다. 이 업체를 파다보면 또 다른 유명 코인들의 시세조종 사실들이 줄줄이 나올 수 있다. 또 범죄에 연루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시장조성자들의 활동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 이것은 암호화폐 업계 전체에 상당한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또 하나는 앞서 언급했던 증권법 위반 이슈다. SEC가 권도형과 테라에 제기한 소송에서 전부 승소한다면, 이들과 유사한 구조와 사업 모델을 가진 다른 코인 프로젝트들에도 똑같이 미등록 증권 판매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이 역시 업계 차원의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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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ie La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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